2016년 1월 10일 일요일

무슬림 전도법

낙타전도법(1)--                                          이00 선교사 서론적인 언급 무슬림들과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세계관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세계관의 차이를 무시한 채 전도를 하다 보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팽팽한 평행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러한 어려움을 최대한 줄이고 복음을 최대한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게 소개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낙타 전도법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인간이 되셔서 오셨듯이, 우리가 무슬림들을 구원하기 위해 무슬림들의 세계관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는 것은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도 방법은 자칫 오해받기 쉽고, 또는 꾸란과 성경 사이에 존재하는 엄격한 차이점, 특히 꾸란의 자체 모순과 구원의 불충분성, 그리고 적그리스도적인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이러한 특성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용해야 한다. 이 전도법은 Kevin Greeson에 의해 책으로 소개되었다. 본인도 이 전도 방법을 실제적으로 사용하였을 때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전도 방법의 장점은 꾸란의 알-이므란 3:42-55을 이용하여 그들이 단순히 선지자 중의 하나로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지위를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로 끌어 올리게 한다는 것과, 핍박의 최소화 또는 예수에 관하여 말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꾸란이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옹호하는 구절들을 이용해 대단히 힘 있는 변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낙타 전도법을 이용할 때 가장 염두해 두어야 할 점은 꾸란의 구절을 가지고 최대한의 복음 메시지를 실어 전하는 것이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꾸란을 통해 올바로 시정하여, 결국 꾸란에서 성경으로 무슬림을 인도하는데 목적이 있다. 낙타 전도법을 사용하기 위해 1. 먼저 전도하러 나가기 전에 기도하라. 결과를 기대하며 믿음으로 기도하라. 하나님이 이미 이 공동체 사회에서 일하시고 있으며, 하나님의 복음에 열려진 ‘평화의 사람들’이 이미 거기에 있음을 깨달으라. 2. 가기 전에 이것들을 기억하라. 1) 꾸란의 복사본을 가지고 가서 무슬림을 화나게 하지 말고, 그들의 꾸란을 그들 스스로 읽게 하라. 2) 무슬림들을 만날 때, 그들에게 진리를 설교하는 것보다는 그들에게 질문하여 그들로부터 진리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3) 무슬림들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충분한 빛이 꾸란에는 없다. 그러나 무슬림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평화의 사람’을 이끌어낼 만한 진리의 조각들은 충분하다. 4) 당신이 꾸란을 가지고 꾸란 안에서 질문들을 하는 한, 그들은 당신이 이사에 대해 가르친다고 비난하거나 공격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일단 평화의 사람을 이끌어내면, 당신은 꾸란을 뒤에 남겨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가르쳐야 한다. 5) 무슬림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줄 꾸란 구절이 있다. 머이다 5:82-83에서  무함맡은 그리스도인을 극도로 칭찬하고 있다. 알-이므란 3:42-55 1. 이사는 거룩하다. 2. 이사는 능력이 있으며, 죽음 위에 권세를 가지고 있다. 3. 이사는 하늘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 친근하게 서로 소개를 하고 난 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꾸란을 가지고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예, 나는 꾸란에서 하늘에 있는 영원한 소망에 관한 놀라운 진리를 발견했다. 라 알-이므란 42-55절을 읽어 주시겠습니까? 함께 이야기 해 보자. 두 번째 예, 꾸란이 이사에 관해 아주 흥미로운 것들을 말하고 있더라. 한 번 알-이므란 42-55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세 번째 예, 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나 무슬림들에게나 평화와 구원에 관하여 말한다. 꾸란에서 내가 발견한 평화와 구원에 관한 것을 보여 줄까? 알-이므란 42-55절까지 읽어 주겠어? * 이러한 질문들도, 그리고 이후의 내용들도 상대방의 조건에 따라, 그리고 주어진 시간에 따라 적절하게 줄일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진리의 요점들을 잘 정리해 두고 전한다면 도움이 많이 된다. 아래의 꾸란 본문이 문법적으로 매끄럽지 못할 수도 있는데, 꾸란 자체가 문법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점, 문장들이 완전하게 끝맺음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알-이므란 42-55절 42 천사들이 말했을 때를 기억하라. “오 마리얌! 진실로 알라가 여자들 사이에서 너를 선택했고, 모든 죄악들에서 깨끗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너를 모든 세상 여인들로부터 뛰어나게 했노라. 43 오 마리얌! 우리의 주에게 복종하고, 엎드려 절하는 자들과 함께 절하라. 44 이것은 우리가 너에게 영감을 준 천사들의 소식들의 일부분이다. 너는 그들이 그들 중 누가 마리얌을 돌보는 일을 맡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알기 위해 그들의 펜들을 제비 던졌을 때 그들과 함께 있지도 않았으며, 그들이 토론할 때 그들과 함께 있지도 않았다.” 45 천사들이 말했을 때를 기억하라. “오 마리얌! 분명히 알라는 너에게 그로부터 온 말씀의 기쁜 소식을 주노라. 그의 이름은 마시 이사 (메시야 - 기름부음을 받은 자, 또는 약속된 자) 처녀 마리얌 되어, 이 세상과 오고 오는 세상에 있는 영광스럽고, 그는 알라에게 가까이 있는 자들 중의 하나(알라에게 가까이 있기 위해서는 죄로부터 완전히 거룩해야 한다)이다. 46 그는 사람들에게 요람에 있을 때도, 성장했을 때처럼 말할 것(지식이 있는 자, 지혜로운 자)이다. 그는 거룩한 자들로부터이다.” 47 마리얌 : “오 나의 주여! 나에게 사람이 만진 적이 없다면, 어디로부터 나에게 자녀가 있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알라가 말했다 : “그와 같이, 알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든다. 언제 어떤 일을 뜻하면, 그에게 : ‘되어라!’, 라고 한다. 그만이다. 그 일이 된다.” 48 그리고 이사에게 쓰는 것과 지혜, 타우랏과 인질을 가르칠 것이다. 49 그를 종 이스라엘 종족에게 선지자 삼을 것이다. 이사가 종 이스라엘에게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너희 주, 곧 나의 참 선지자인 것을 증거하시는 자로부터 증표를 초래했다. 나는 너희들에게 흙으로부터 새 모양을 만들고, 후에 그에게 호흡을 불어넣으면, 그것은 알라의 뜻대로 진짜 새가 된다(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한 것과 동일한 방법, 예수는 창조자). 그리고 또 소경, 문둥병자들을 고칠 수 있고, 알라의 뜻대로 죽은 자들을 살려낼 뿐만 아니라, 너희들에게 먹을 것과 너희들 집에 보관하고 있는 것들을 말해 낼 수 있다(모든 것을 아시는 자). 만일 믿는 자들이 된다면, 당연히 너희를 위해 이 일들 안에 증표가 있을 것이다.” 50 “너는 너희들에게 나의 전에 있었던 타우랏의 진리인 것을 증거자 되는 경우에, 그리고 너희들을 위해 부정하게 된 것들을 정하게 하기 위해 왔다(예수는 부정한 것을 정하게 하고, 죄악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권세가 있으신 분). 그리고 너희에게 너희 주로부터 증표를 초래했다. 됐다. 알라를 두려워하라 그리고 나에게 복종하라! 51 당연히 알라는 나의 주이며, 너희의 주이다. 됐다. 그에게 경배하라! 보라 이것이 올바른 길이다(예수는 올바른 길을 아신다)!” 52 그 때 언젠가 이사가 유대인들 쪽으로부터 불신앙을 보고서는, “알라의 누가 나의 보조가가 되겠는가?” 라고 했다. 사도들이 말했다: “우리가 알라의 종교(?)에 도움을 주는 자들이 되겠습니다. 알라를 믿었습니다. 오 이사, 증인이 되세요. 우리가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들입니다. 53 주여! 당신이 보내준 것을 믿었습니다. 당신의 선지자를 따랐습니다. 됐습니다. 우리를 증거자들 반열에 기록해 주세요!” 54 유대인들이 음모를(계획을) 꾸몄다. 알라도 계획을 꾸몄다(?). 알라는 가장 계획을 잘 세우는 분이다. 55 알라가 말한 이 말들을 기억하라: “오 이사, 당연히 나는 너를 땅으로부터 온전히 취하는 자이며, 자신의 면전으로 올리는 자이다. 그리고 너를 불신자들로부터 구원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종말의 때까지 너를 따르는 자들을 불신자들보다 높게 올리는 자이다. 후에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충분하다, 나는 네가 논쟁한 것들에 대해 너희 사이에서 심판할 것이다.” 1. 이사는 거룩하다. 42-44절은 어떻게 천사들이 마리얌에게 보내졌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45절 이사는 칼리맛툴라흐, 루훌라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사는 알라의 말씀이고, 알라의 영이다. 이 점에 대해 니서 수라 171절에 기록되어 있다. “알라에게는 오직 진리를 말하라! 당연히 메시야,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오직 알라의 사도이며, 마리아에게 보낸 알라의 말씀이며, 알라로부터 온 영이다” 따라서 꾸란은 “이사 칼러므”, “이사 루흐”가 알라 자신으로부터 보내졌고, 마리얌에게서 아기가 되었다고 가르친다. 그것은 이사가 알라 자신으로부터 우리에게 왔음을 의미한다. 만일 알라가 마리얌에게 자기의 영을 두었다면, 알라가 마리아 안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느냐? 이것은 이사와 알라가 하나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알라는 마리얌에게 그 아기를 “이사 마씨흐”라 이름지으라고 했다. 마씨흐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 또는 “약속된 자”를 의미한다. ‘예수가 모든 사람들에 의해 이 세상에서도 하늘에서도 영원히 존경을 받을 것이고, 알라에게 가까이 있는 자들 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가 알라의 말씀과 영이기 때문에 당연히 알라 가까이에 있는 일은 쉬운 일이다. 우리는 또 왜 이사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 존경을 받는지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는 이사에게 존경을 돌리지 않는 사람들이 없다. 46절, 알라는 이사가 어른이 되었을 때 뿐만 아니라 요람에 있을 때에도 어른이 되었을 때처럼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사가 요람에 있으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이사의 지식과 지혜가 어렸을 때에나 어른이 되었을 때나 완전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알라는 이사가 거룩하다고, 의롭다고 말한다. 그가 죄를 지은 적이 있었던가? 이사는 결코 죄를 지은 적이 없다. 그는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어떤 사람을 죽인 적도 없고, 가난하고 거룩하게 살았다(마호멧은  이와 반대로 살았다). 47절, 마리아는 알라의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가녀가 아이를 가졌는가? 어떤 사람도 그를 만지지 않았다. 그러나 알라는 자기가 원하는 일은 어떤 것이든지 할 수 있다고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 알라가 하는 일은 단지 “있어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되어진다. 아버지를 가지지 않은 다른 선지자들이 있는가? 아담이 아버지를 가지지 않았다. 아담은 창조되었을 때 죄가 전혀 없이 거룩했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걸을 수 있었다. 그는 거룩한 하나님의 면전에서 자유롭게 지내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불복종하였을 때, 더 이상 거룩한 하나님의 면전에서 있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100%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하지 않은 자는 그의 면전에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당신이 만일 하나님과 함께 있기 위해 천국에 가고 싶다면, 당신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알라는 이사가 아버지 없이 태어나게 했는가?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죄와 씨름하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담의 혈통이 아니라면, 그는 범죄하기 전의 아담처럼 거룩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사는 그의 전체 인생 가운데서 아무런 죄도 짓지 않고 살았다. 이사는 거룩하다. 알라는 아무 일도 우연히 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은 그의 완벽한 계획 아래 이루어진다. 왜 알라가 이사가 아버지 없이 태어나야 한다고 결정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하나님처럼 거룩했지만, 한 번 알라를 불복종하여 죄를 지었을 때, 그와 함께 그의 모든 후손들이 타락을 했으며, 더 이상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게 되었다. (이사가 아버지 없이 태어났다는 것을 말하면 혹자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아담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가 어머니 안에 있을 때, 어머니와 아이의 피가 결코 서로 흐르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둘 다 죽게 된다. 아이는 자라면서 스스로 피를 만들어낸다. 이슬람은 행위에 근거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종교이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과 하나님의 면전에서 추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 것은 오직 단 하나의 죄 때문이었다는 것을 지적해 주어야 한다. 때로 회개하면 알라는 용서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아무런 근거 없이도 용서해 준다고 생각한다. 행위 구원과 회개를 통한 값 없는 용서는 서로 모순이지만, 어쨌든 이 양자는 모두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선한 행위는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불교인이든, 무슬림인이든, 그리스도인이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자신의 선한 행위로 죄의 오염과 형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아담의 경우를 통해 설명해 주어야 한다. 또한 아무리 죄를 지은 후 후회하고 용서를 빌어도 형벌을 면할 수 없음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단 한 가지 죄만 지었지만, 아담은 더 이상 거룩하지 않은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죄 없는 자만이 살 수 있는 낙원에서 추방되었으며,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되었다. 단 한 가지 죄가 이처럼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었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철저히 무능력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아담이 자기 힘으로 다시 에덴 동산으로 돌아갈 희망은 없다. 그리고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 갈수록 더 부패해져 가는 모든 사람들은 더욱 더 자기의 노력과 선한 행위로 거룩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선한 행위를 쌓아도 자기의 부패함을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한 번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스스로 되찾을 길이 없다. 이것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선지자도 마찬가지이다. 꾸란도 이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타하 수라 20:121 “그래서 그들 둘이 그것을 먹었고, 그리하여 그들의 악한 경향들이 그들에게 나타났으며, 그들 둘이 동산의 잎들로 자신들을 덮기 시작했으며, 아담은 그의 주를 불순종하여 그의 삶이 악해졌다.”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타락하지 않은, 죄가 전혀 없는 새로운 반열을 시작하기 위하여 이사를 보내주셨다. 이사는 아담이 처음 창조될 때 거룩하여 하나님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그와 같이 이사는 알라에게 가까이 있는 자들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사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아담이 단 한 가지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법대로 죄에 대한 형벌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 아담에게 첫 번째 온 죽음은 영적인 죽음이었다. 그는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죄와 죽음이 없는, 오직 생명이 있는 낙원으로부터 추방 되었다. 그와 함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부정하게 되었고 동일한 형벌을 받았다. 이제 아담이 아무리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실수와 범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려 해도 죽음이라고 하는 형벌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선한 삶을 살아도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원래대로 회복시킬 수 없다. 아담이 타락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회복시킬 새로운 계통의 아담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였다. 창 3:14-15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바로 ‘여자의 후손’을 우리의 구원자로, 승리자로 보내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처녀 마리얌에게서 탄생한 예수가 바로 그 ‘여자의 후손’이다.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인간의 방법, 즉 무화과 나뭇잎으로는 죄로 인한 부끄러움을 가리울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덮어주시기 위해 희생양을 필요로 하셨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자의 후손’과 ‘희생양’이 바로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를 용서받기 위해 회개하는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형벌을 내리셔야 하고, 죄에 대한 형벌은 하나님의 법대로 죽음이다. 이 죽음은 영적인 죽음, 육적인 죽음, 두 번째 죽음인 지옥을 모두 포함한다. 모든 아담의 후손은 죄인이고, 죄와 허물에 대한 형벌로 영적인 죽음인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을 맛보며, 육적인 죽음을 맛본다. 하지만 두 번째 죽음인 지옥은 죄로부터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만 들어가게 되는 것이고 영원토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죄와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평화를 맛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자기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참 평화와 참 행복을 주시기 원하신다. 당신도 이러한 행복을 소유하고 싶지 않은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형벌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가 무한히 많은 분이시지만, 의로운 재판장이시고 부득불 형벌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고 우리를 정당하게 구원하시기 위해 속죄제물, 즉 우리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고 죽게 되는 희생제물을 통해 구원받는 길을 열어주셨다. 예를 들어, 내가 죄를 지으면 속죄양을 준비하여 성전에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내가 벌을 받고 죽어야 하는데, 죄와 허물이 없는 양이 나를 대신해서 벌을 받고 죽는 것이다. 내가 성전에 양을 데리고 나오면, 제단 앞에서 양의 머리 위에 내 손을 얹고 회개를 한다. “하나님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나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죽어야 하지만, 나를 대신하여 이 희생양을 받아 주시고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용서를 구하고 나면, 나의 죄를 그 양의 머리에 전달하고 내 손으로 칼을 들어 양을 죽인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흐르는 피를 받아 죄인인 나에게 뿌려 나의 죄를 깨끗하게 한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에 오면 항상 죄인들로 가득했고, 죄의 댓가로 죽어가는 희생양들을 보았으며, 피흘림이 없이는 깨끗함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흠없는 짐승도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온전한 희생양이 되시는 누군가가 와서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대신 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죄에 대한 형벌을 받아 피흘려 죽을 것과, 우리에게 내려야 할 형벌을 그에게 내려 우리의 죄를 그의 공로로 용서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시는 제도인 것이다.

출처: 바울선교회 http://www.bauri.org/gb/bbs/board.php?bo_table=stratege&wr_id=184&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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